미얀마 중부의 뜨왓트위 평원에 자리 잡은 바간(Bagan)은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불교 유적지 중 하나로 꼽힙니다. 약 9세기부터 13세기 사이, 이곳은 파간 왕조의 수도였으며 불교가 번성하던 시기 약 1만 개에 달하는 불탑과 사원이 세워졌습니다. 현재도 2,000개 이상의 파고다와 사원이 남아 있어 바간은 거대한 야외 박물관이라 불립니다. 이 거대한 신앙의 도시에는 단순한 역사 이상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한 왕이 천 개의 탑을 부처님께 바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는 전설입니다. 이 신화 같은 이야기는 바간의 파고다 하나하나를 더욱 경건하게 바라보게 만들며, 여행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미얀마 바간 천 개의 탑
전설의 주인공은 바간 왕국의 위대한 군주, 아노라타(Anawrahta) 왕입니다. 그는 11세기 중엽 왕위에 오르면서 테라바다 불교를 국가 종교로 채택하고, 미얀마 전역에 불교를 전파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아노라타 왕은 신심이 깊은 군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현하기 위해 ‘천 개의 파고다를 세워 이를 부처님께 바치겠다’는 서원을 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건축 사업이 아니라 왕의 신앙, 국가의 정체성, 국민의 결속을 다지는 의미 있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는 우선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고승들을 초청해 불교 교리를 정비하고, 장인들과 건축가를 전국 각지에서 불러 모아 파고다 건설에 착수했습니다. 매년 수십 개씩의 사원이 세워졌고, 그 수는 점차 수백 개로 늘어났습니다. 당시 바간은 강과 연결된 비옥한 땅에 자리해 물자 수송과 인력 동원이 쉬웠고, 왕은 백성들에게 “탑을 쌓는 일은 복을 짓는 일”이라며 자발적인 노동 참여를 이끌어 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세워진 붉은 벽돌 탑은 바간 평원을 가득 메웠고, 이 도시 전체가 하나의 불교 성지로 거듭났습니다. 천 번째 탑이 세워졌다는 날, 왕은 직접 그곳에 올라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새로운 탑의 설계와 기부를 멈추지 않았고, 그 믿음은 후대 왕들에게도 이어져 수많은 파고다 건설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천 개의 탑은 실제로 세워졌다는 기록보다는 상징적 의미가 강하지만, 오늘날 바간 평원을 채운 수천 개의 유적은 그 전설을 뒷받침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사원
바간의 탑들은 단순히 기도처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각각의 탑과 사원은 특정 불교 사상을 상징하며, 건축적 특징 또한 다양합니다. 원형의 스투파형 탑, 사방을 향해 불상이 놓인 방형 사원, 내부에 회랑과 벽화를 가진 복합 구조까지 다양한 형태가 혼재되어 있으며, 이는 당시 불교의 융합성과 미얀마 고대 건축기술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원 중 하나인 아난다 사원(Ananda Temple)은 인도 굽타 양식의 영향을 받아 건설되었으며, 내부에는 동서남북을 향한 4개의 거대한 불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불상은 자비, 인내, 평온, 깨달음을 상징하며, 방문자들은 각 불상 앞에서 명상하거나 기도를 올립니다. 다마양지 사원(Dhammayangyi Temple)은 피라미드형 구조로 지어졌으며, 미얀마에서 가장 크고 견고한 벽돌 사원으로도 유명합니다. 이곳은 건설한 왕이 백성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기 위해 완벽한 벽돌 공법을 명령했으며, 벽돌 틈에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정밀하게 쌓았다고 전해집니다. 사원의 벽에는 자타카(부처의 전생 이야기)를 묘사한 벽화가 그려져 있어, 과거 사람들의 신앙과 예술혼을 동시에 엿볼 수 있습니다. 바간의 사원들은 기도와 명상의 장소인 동시에, 설법과 교육의 공간이었고, 인간의 고뇌와 희망, 신앙과 깨달음이 교차하는 신성한 공간이었습니다.
관광지
오늘날 바간은 미얀마를 대표하는 관광지이자, 전 세계 불교 신자들의 순례지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보존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히 2016년 지진으로 훼손된 수많은 사원이 정부와 국제기구의 협력을 통해 복원되고 있습니다. 현지 가이드는 바간의 역사뿐 아니라 전설을 함께 들려주며 여행객들에게 신비로운 분위기를 전달합니다. 바간에서는 열기구 투어가 인기 있는 체험입니다. 해 뜨기 전 고요한 새벽, 수십 개의 열기구가 하늘에 띄워지고, 여행자들은 하늘에서 바라보는 붉은 사원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신의 시선으로 바간을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하며,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남깁니다. 바간은 또한 여전히 살아 있는 신앙의 공간입니다. 사원 곳곳에서 향을 피우고 기도하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으며, 특별한 날에는 법회와 축제가 열리기도 합니다. 탑마다 전해 내려오는 고유의 전설과 사연이 있으며, 여행객들은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바간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라, 미얀마인들의 영혼과 신념이 담긴 ‘살아 있는 도시’입니다.
언젠가 바간을 찾게 된다면, 수천 개의 탑 중 하나 앞에 조용히 앉아 보세요. 그리고 생각해 보세요. 천 개의 탑을 세우려 했던 그 왕의 마음, 오직 믿음 하나로 돌을 쌓고 벽돌을 올렸던 사람들의 열정, 그 모든 것이 오늘날까지도 바간의 하늘 아래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 순간, 바간은 단지 관광지가 아닌, 영혼이 정화되는 깊은 여정의 출발점이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