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를 여행하다 보면, 언젠가 좁은 골목을 따라 걷다 거대한 석조 분수와 맞닥뜨리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바로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입니다. 이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분수는 로마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원의 장소’ 중 하나입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분수 앞에 서서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비는 이곳에는 수백 년에 걸쳐 전해 내려오는 미신과 전설, 그리고 현대적 의미까지 깊이 얽혀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로마 트레비 분수에 대한 이야기를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로마 트레비 분수의 속설
트레비 분수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이 바로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에 오게 된다’는 속설입니다. 이 미신은 오랜 시간 여행자들 사이에서 퍼져온 전통으로, 지금도 로마를 찾는 거의 모든 관광객이 한번쯤 체험하고 가는 ‘필수 의식’이 되었습니다. 이때 반드시 지켜야 할 방식이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데,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 너머로 동전을 던져야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디테일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동전을 던지는 행위 같지만, 이 소소한 의식은 여행자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등을 돌리고 소원을 속삭이며 동전을 던지는 그 순간은 짧지만 간절하고, 도시와의 정서적 연결을 만들어줍니다. 동전 하나는 로마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소망, 둘은 사랑을 만나게 해주며, 세 개는 결혼 혹은 사랑의 결실로 이어진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지며 더 큰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트레비 분수는 단순히 ‘분수’ 이상의 상징성을 가집니다. 물이 흐르고 소원이 담긴 동전이 바닥에 차곡차곡 쌓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여행자들은 이 도시가 자신을 기억해주길, 다시 만날 수 있길 소망합니다. 그 순간 로마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개인적인 이야기를 간직한 ‘의미 있는 장소’가 됩니다.
낭만의 상징
트레비 분수가 이처럼 사랑받는 데에는 단지 미신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분수는 로마 바로크 예술의 정수이자, 수백 년 동안 도시의 예술적 자부심을 상징해온 걸작입니다. 1732년 교황 클레멘스 12세의 명으로 착공되어 니콜라 살비가 설계한 이 분수는, 30년 넘는 세월 끝에 1762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전면은 높이 약 26m, 폭 약 50m에 달하며, 해신 네투누스(로마 신화의 바다의 신)와 트리톤, 해마 등 바다 생물들이 조각되어 있는 장면은 생동감 넘치는 바로크 양식을 보여줍니다. 트레비 분수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또 하나의 계기는 바로 영화입니다. 1954년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라 돌체 비타(La Dolce Vita)’에서 여주인공 안니타 에크베르그가 트레비 분수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은 명장면이 되었고, 이 장면을 따라 하려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분수는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이처럼 예술과 영화, 그리고 로마의 고전적 분위기가 어우러지며, 트레비 분수는 ‘낭만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트레비 분수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이어져 온 물의 도시 로마의 유산이기도 합니다. 이 분수가 위치한 자리는 실제로 고대 아쿠아비르고 수도의 말단 지점으로, 로마 시민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던 장소였습니다. 현재의 분수는 바로 그 전통 위에 세워진 것으로, 로마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물의 흐름이 지금도 이 분수 안에서 계속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트레비 분수는 단지 관광지가 아닌, ‘물과 이야기의 도시’ 로마를 상징하는 유산으로도 해석됩니다.
동전
수많은 소원이 담긴 동전이 하루에도 수천 개씩 분수 바닥에 떨어집니다. 대부분 1유로 미만의 동전들이지만, 그 수가 어마어마하여 연간 수거 금액은 약 150만 유로(약 20억 원)에 달합니다. 이렇게 모인 동전은 로마 카톨릭 자선단체 ‘카리타스(Caritas)’로 전달되어, 노숙자 지원, 빈곤층 식사 제공, 복지시설 운영 등 다양한 사회복지 사업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트레비 분수에 던져지는 작은 동전 하나는 누군가에게는 꿈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현실적인 도움을 안겨주는 ‘나눔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미신에서 시작된 전통이 자선으로 이어지는 이 선순환 구조는 전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아름다운 사례로 꼽히며, 로마 시민들과 관광객 모두에게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로마 시청은 정기적으로 분수 청소 및 동전 수거를 진행하며, 모든 수익을 자선 목적에만 사용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트레비 분수는 단순히 아름다운 건축물이나 낭만의 장소를 넘어서, 도시가 사람의 마음을 담아내고 다시 세상으로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공간으로 발전한 사례입니다. 분수 앞에서 무심코 던진 동전이 다시 사랑으로, 희망으로, 도움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의 여행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트레비 분수 앞에서 등을 돌리고 조용히 소원을 빌며 동전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 작은 행동은 사실 ‘다시 로마에 오고 싶다’는 말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죠. 그것은 이 도시와 다시 연결되고 싶다는 바람이며, 짧은 여행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남기고 가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그 동전은 로마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트레비 분수는 지금도 누군가의 소원과 누군가의 도움을 연결해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원의 분수’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